안녕하세요.
인터넷의 어느 한 구석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Hahn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작은 비트의 조각들을 찾아 다닙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골목에서 주운 조약돌과 버려진 장난감을 소중한 보물로 여기듯이요.
[오늘의 드립]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
유튜브 영상 추천을 따라가다 자신의 관심사와 전혀 상관 없는 영상을 보게 될 때 쓰는 말. 주로 유튜브 댓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반복하는 행동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딱 두개만 먹어야지” 하지만 일단 프링글스 통 속에 손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손은 자동으로 통 안과 입 사이를 오가기 시작합니다. 공부하려 책만 펴면 손은 자동으로 3초에 한번씩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들어올리는 불수의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영상을 하나 보고나면 손가락은 반사적으로 ‘다음 동영상'을 터치합니다.
유튜브 추천 시스템이 신기한게, 분명히 앞에 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추천하는데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영상을 추천해 줍니다. 이런 식으로 몇개의 영상이 흘러가고 나면 우리는 처음 영상과는 전혀 다른 영상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흐의 캐논 연주 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정신 차려 보면 2시간 35분짜리 ‘비오는 저녁 듣고 싶은 재즈 명곡 모음’ 영상을 틀어놓고 있는 것이죠.
드립의 활용
이런 경험은 나만 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내가 도착한 그 영상의 댓글란에는 이미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는 먼저 온 이들의 메시지가 남아 있습니다.
유튜브 추천 영상에 평소 내가 보던 주제의 영상과는 별 상관 없는 뜬금없는 영상이 뜨는 경우에도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런 경우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결함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이런 ‘뜻밖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발견과 그로 인한 체류 시간의 연장을 노린 것이라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유튜브 영상 피드에 별 이유 없이 경사가 90도에 가까운 말도 안 되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산양을 찍은 BBC 영상이 뜬 적이 있습니다. 댓글에는 이미 ‘추천 영상 타고온 사람 손’ 같은 댓글로 가득 차 있었죠.
유튜브 알고리즘의 인도는 때로 성공적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뜬 추천 영상을 눌러본 것이 입덕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드립의 유래
이 드립은 유튜브 영상에 종종 달리는 ‘Youtube algorhytm brought me here’라는 영미권 댓글이 직역되어 국내에도 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어권에서는 ‘I’ve never searched this’라는 댓글도 비슷한 용도로 많이 쓰입니다. 내가 보려 해서 본 영상이 아니라 유튜브의 알고리즘 때문에 생각지 못 하게 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알고리즘이란 말은 사실 일상 생활에선 거의 쓸 일이 용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유튜브를 정말 많이 보고, 유튜브 알고리즘도 뉴스 등을 통해 많이 소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드립으로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IT 기업들의 기술이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우리의 일상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보다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죠. 특히 이게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 속에 있다면요. 이건 유튜브만의 문제는 아니고,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누구의 글이 더 많이 올라오느냐, 네이버 검색 결과 맨 윗자리에 왜 이게 올라와 있느냐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그는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이 결코 민주주의적이고, 진실에 가깝고, 균형적인 것을 최적화한 형태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가장 우선순위는 시청 시간이다. 그는 자신이 일했던 엔지니어팀에서 사람들이 유튜브 내에서 동영상 시청 시간을 연장해 광고 수입을 늘리도록 하는 시스템을 계속해서 실험했다고 밝혔다.
원래 우리의 삶은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수많은 변수들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긴 합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짠 알고리즘이 나의 삶의 선택을 좌우한다면, 더구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똑바로 쳐다봐야 할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유튜브 드립’은 적어도 우리가 그 알고리즘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쩌면 희망적인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I seriously don't know about this but after reading your post I got something new here.